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정판사 위조지폐 사건 (문단 편집) ==== 미군정청 공보부의 발표 ==== 당시 위폐 사건이 굉장히 많았는데 여타 위폐 사건과는 달리 정판사 사건은 경찰이 아니라 군정청 공보부 명의로 발표되었다. '미군정기 인플레이션 및 위폐 실태' 목차 참고. 실제로는 미군정이 수사에 직접 개입했다. 군정청 공보부 제1회 발표의 재료 출처가 CIC였던 것이 판명되었다. 그럼에도 미군정은 이를 숨기고 '경찰 보고'에 따랐음을 강조한다. >여타의 위폐 사건과는 달리 이 사건은 경찰이 아니라 군정청 공보부 명의로 발표되었다.(중략) > >발표문에는 ‘경찰 보고에 의하면’과 같은 표현이 지나칠 정도로 여러 번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미군정 스스로도 5월 8일 이후 수사에 직접 개입한 사실이 있다.172) 그럼에도 이를 드러내지 않은 채 ‘경찰 보고’를 강조한 것은 미군정이 이 사건의 수사에 직접적으로 개입하지 않았다는 인상을 줌으로써 이 발표의 파장에 따른 책임을 회피하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즉 미군정은 이 발표가 미군정이 공산당을 공격하기 위해 행한 정치적 행위로 해석될 수 있는 여지를 차단하려는 의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 >각주 172) 서울지방심리원, 「논고 요지」, 『위폐사건 공판기록』, 대건인쇄소, 1947, 26쪽.“증인 이철원의 공술에 의하여 본 건에 관한 군정청 공보부 제1회 발표의 재료 출처는 우익 정치단체가 아니고 CIC였던 것이 판명되었고” >---- >임성욱, 미군정기 조선정판사 '위조지폐' 사건 연구, 2015, p104 >정판사사건은 미군정이 꾸민 일이고, 경찰은 그 지시를 받아 움직인 것으로 보인다. 5월 4일 뚝섬 위폐사건을 적발한 것은 경찰의 일이었겠지만, 그 범인 중 하나가 정판사 직원이라 해서 5월 8일 근택빌딩의 정판사를 수색하는 데는 미군정의 의지가 작용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리고 5월 15일의 사건 발표는 장택상 제1관구(경기도) 경찰부장의 보고 내용이라면서도 군정청 공보과에서 발표했다. >---- >김기협, [[https://n.news.naver.com/article/002/0001974990|해방일기]] 미군정은 '1945년 10월 중순 근택빌딩 2층 [[조선공산당]] 사무실에서 [[이관술]], 권오직이 김창선에게 위조지폐를 인쇄하라고 지시했다. 이후 김창선은 6차례에 걸쳐 9백만원을 인쇄해 이관술에게 제공했는데 아무 보답이 없자 분하게 여기고 징크판을 다른 사람에게 팔았다가 발각되었다'고 발표했다. >발표 내용에는 뚝섬 위폐 사건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정판사 ‘위폐’ 사건이라는 것 자체가 뚝섬 위폐 사건에 연루된 김창선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확대 수사된 것이고, 5월 9일 이래 각종 신문 기사에서는 뚝섬 위폐 사건과 정판사 ‘위폐’ 사건이 혼재되어 보도되어 왔으므로 이에 대한 시민들의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뚝섬 위폐 사건에 대한 조사 결과를 따로 발표하거나 최소한 정판사 ‘위폐’ 사건 발표문 내에 뚝섬 위폐 사건에 대해 간단히 언급하는 것이 필요하였다. 그럼에도 군정청에서는 전혀 그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 >임성욱, 미군정기 조선정판사 '위조지폐' 사건 연구, 2015, p104 이에 권오직과 이관술은 [[월북]] 권유를 받았는데 권오직은 월북했지만 이관술은 월북을 거부하고 남았다. [[http://m.usjournal.kr/news/newsview.php?ncode=1065578670355160|#]] >항상 가장 위험한 자리를 지키던 그가 개인의 안전을 위해 월북했을 리 없고, 실제로 정판사 사건으로 수배되고도 월북을 거부했다. >---- >안재성, 이관술 1902-1950, 2006 또 미군정은 '정판사 사장 박낙종[* 이 사람이 [[민생당]] 소속 국회의원을 지낸 [[박지원(1942)|박지원]]의 조부라는 소문이 돌았지만 사실이 아니다. 박낙종은 경남 사천 출신이고 박지원 의원의 조부는 전남 진도 출신으로 전혀 다른 사람이다.], 서무과장 송언필이 이들의 지시 하에 위조 지폐를 인쇄해 유통시켰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박낙종, 송언필은 이 발표 이전에 직공들이 구속되자 석방을 교섭하러 경찰서에 갔다가 구속되었다. 송언필, 신광범은 위폐가 인쇄되었다는 대부분의 시기에 공산당원도 아니었다. >박락종은 1945년 10월 경, 송언필은 1946년 2월 경, 신광범은 1946년 1월에 입당하였다. >---- >임성욱, 미군정기 조선정판사 '위조지폐' 사건 연구, 2015, p56 각주15) 5월 18일 [[미합중국 육군]] [[대위]]의 인솔 아래 수백명의 [[미합중국 육군/군사경찰|미 육군 헌병]]들이 근택빌딩을 포위한 후 공산당 중앙당 사무실과 '해방일보'를 샅샅이 수색해 공산당 관련 서류 일체를 압수해갔다. 미군정 적산관리과는 조선공산당으로부터 근택빌딩을 회수, 공산당은 5월 30일 [[숭례문|남대문]] 앞 일화빌딩으로 사무실을 옮겼다. 미군정은 이 사건이 '조선 공산당과는 관계가 없는 경제 사건'이라 발표하기도 하고 '한국인 경찰의 조작일 경우는 크게 엄단하겠다'는 엄포를 놓기도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